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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제임스 황
UCLA 학생
보 황은 UCLA Extension 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예비 의학 학생입니다. 그는 의학 및 공중보건 연구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자 합니다. 현재 공공 건강을 위한 아시아 태평양 섬 코커스의 학생 / 젊은 전문 이사 II, TGNC 건강 연구 자문 네트워크의 연구 커뮤니티 고문 및 남부 캘리포니아 람다 의료 협회의 부회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자라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한국 의정부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우리 아버지와 누나와 같이 이스트 할리우드로 이민을 오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15살 때, 한인타운에 있는 저소득층 주택으로 이사를 갔죠.
이스트 헐리우드에는 한인분들이 많았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거기는 주로 라틴계 사람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이소룡이라고도 불렸고, 눈이 작다고 놀림 받고… 제가 자랐을 때는 아시안들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이렇게 밖에 없어서 참 힘들었어요.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와 같은 모습을 수 없었다는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자라면서 아무런 “아시안 롤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도 없으셨어요?
네, 사실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글쎄요, ‘교회에선 혹시 있었을까?’ 라고도 생각해 보는데, 교회는 좀 다른 세상이니까... 사회에서는 없었다고 봐야죠.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은 따로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은요? 그런 공동체나 롤모델을 찾으신 것 같으세요?
찾았죠. 그런데 이분들 중에 좋아하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저랑 똑같은 사람은 아직 못 만나 봤어요. 예전에는 마음을 닫고 오로지 나에게 딱 맞는 롤모델을 찾으려 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모든 면에서 장점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야 왜 제가 롤모델이 생긴지를 알 수 있죠.
아시안들이 많이 없었던 이스트 할리우드에서 갑자기 한인타운으로 이사를한 경험은 어떠셨나요?
너무... 달랐어요. 우리 가족은 너무 가난했고, 우리 주변에 계신 한인분들도 가난하다보니, 같은 민족 사람들끼리 사기를 치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살았어요. 정말로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아실거라 생각해서 물어보는데, 혹시 많은 사람들이 덮고 넘어가고 싶어하는 노숙자 문제나 알코올과 마약의 남용, 매춘과 매춘 업소 등이 한인타운에 사시면서 눈에 띄었나요?
그럼요. 저희 아버지가 택시를 운영하셔서 한인타운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일들에 관한 최신 정보를 알 수 있었어요. 그런 문제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KYCC의 정신 건강 서비스와 같은 프로그램들의 필요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누나랑 같이 살고 있고, 자세히 보면 우리 집에는 3 세대가 같이 살아요. 저의 85세 되시는 할머니께서는 계속 곧 돌아가실거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부추기곤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께, “아빠, 계속 그렇게 말하면 할머니가 우울하실것 같아요” 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버지께서는 “우리는 그런 감정이 없어"라고 대답했어요. 이분들은 정말로 우울증의 존재를 안 믿는 것 같았어요. 윗세대 분들은 우리 세대와 달리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털어내야 했기 때문인지, 젊은 사람들을 보고 너희들은 감정을 너무 많이 이야기한다고 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정신 건강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고, 얼마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의정부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우리 아버지와 누나와 같이 이스트 할리우드로 이민을 오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15살 때, 한인타운에 있는 저소득층 주택으로 이사를 갔죠.
이스트 헐리우드에는 한인분들이 많았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거기는 주로 라틴계 사람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이소룡이라고도 불렸고, 눈이 작다고 놀림 받고… 제가 자랐을 때는 아시안들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이렇게 밖에 없어서 참 힘들었어요.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와 같은 모습을 수 없었다는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자라면서 아무런 “아시안 롤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도 없으셨어요?
네, 사실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글쎄요, ‘교회에선 혹시 있었을까?’ 라고도 생각해 보는데, 교회는 좀 다른 세상이니까... 사회에서는 없었다고 봐야죠.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은 따로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은요? 그런 공동체나 롤모델을 찾으신 것 같으세요?
찾았죠. 그런데 이분들 중에 좋아하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저랑 똑같은 사람은 아직 못 만나 봤어요. 예전에는 마음을 닫고 오로지 나에게 딱 맞는 롤모델을 찾으려 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모든 면에서 장점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야 왜 제가 롤모델이 생긴지를 알 수 있죠.
아시안들이 많이 없었던 이스트 할리우드에서 갑자기 한인타운으로 이사를한 경험은 어떠셨나요?
너무... 달랐어요. 우리 가족은 너무 가난했고, 우리 주변에 계신 한인분들도 가난하다보니, 같은 민족 사람들끼리 사기를 치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살았어요. 정말로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아실거라 생각해서 물어보는데, 혹시 많은 사람들이 덮고 넘어가고 싶어하는 노숙자 문제나 알코올과 마약의 남용, 매춘과 매춘 업소 등이 한인타운에 사시면서 눈에 띄었나요?
그럼요. 저희 아버지가 택시를 운영하셔서 한인타운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일들에 관한 최신 정보를 알 수 있었어요. 그런 문제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KYCC의 정신 건강 서비스와 같은 프로그램들의 필요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누나랑 같이 살고 있고, 자세히 보면 우리 집에는 3 세대가 같이 살아요. 저의 85세 되시는 할머니께서는 계속 곧 돌아가실거라고 말씀하시는데, 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부추기곤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께, “아빠, 계속 그렇게 말하면 할머니가 우울하실것 같아요” 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버지께서는 “우리는 그런 감정이 없어"라고 대답했어요. 이분들은 정말로 우울증의 존재를 안 믿는 것 같았어요. 윗세대 분들은 우리 세대와 달리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털어내야 했기 때문인지, 젊은 사람들을 보고 너희들은 감정을 너무 많이 이야기한다고 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정신 건강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고, 얼마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한인타운에 그런 부정적인 부분들이 있었지만, 혹시 그곳에서 사는 경험이 한국 문화와의 관계를 강화시켰나요?
그런것 같아요. 제가 한인타운으로 이사한 후에 KYCC에서 정신건강검진을 받을수 있었고, 거기에 한인 심리치료사님이 계셔서 좋았어요. 많은 심리치료사들이 보통 백인인데, 이들은 가족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는 것과 같은 아시안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서구 문화는 독립성과 자유가 중심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계속 저한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너는 무엇이든 할수있어!” 또는 “네가 좋을 대로 해!” 라고 계속 말하는데,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에게는 좀처럼 도움이 되지가 않죠.
삶의 여러 장애물에 부딪혀 보셨기에 사회에서 좀더 많은 것들이 개선될 수 있다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한인들이 더욱 더 표현되기를 원해요. 많은 사람들이 제 행동과 외모를 보고 제가 한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러한 한인의 모습이 BTS와 같은 모습보다 더 한국인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BTS와 같은 아이돌 그룹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전통과 문화 전체를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NCLC를 다녀오고 나서 그곳에 같이 있었던 학생들이 모두가 너무 달랐던 것을 보았을 때에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우리 세대의 문화는 이전 세대의 것보다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리 민족의 문화를 잃어버릴까봐 걱정도 됩니다.
한인 문화는 “성공"에 대해서 의사, 변호사나 엔지니어가 되는 것과 같이 매우 고정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걸 아실 것 같아요. 그러면 당신은 “성공”을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매우 흔한 말이겠지만,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저 역시 pre-med라서 많은 한인들이 왜 성공을 그렇게 보는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인종차별을 겪던 시절에 의학박사인 사람을 차별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죠. 저에게 “성공”은 나 자신의 진실된 모습으로 살면서,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정의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입양을 통해 양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 저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현재 입양시스템에 많은 한인 아이들이 있지만, 그 아이들이 양부모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글쎄요, 저도 확실하진 않아요. 애들이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짜증을 나게 할 때도 있겠죠.
어떤 의사가 되고 싶으세요?
저는 제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엄청 똑똑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만 과학 수업에서 A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처럼, 제 생각에 저는 외과 의사 같은건 못할 것 같아요. 주치의나 소아과 의사, 아니면 트랜스와 퀴어 청소년을 위한 의사가 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목숨에 대한 위협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두렵기도 해요. 저는 또한 심리치료사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어요. 심리치료사는 지금도 지원을 할 수 있어서 생각해 본거에요. 그리고 제가 만약에 심리치료사가 된다고 하면 아주 좋은 심리치료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누나랑 친하세요?
예전에 미국에 SaveOn Drugs이라는 가게가 있었어요. 지금은 CVS라고 부르죠. 제가 13살 때 마약을 많이 했었고 SaveOn에서 초콜릿을 훔쳐서 그것을 판 돈을 가지고 마약을 더 샀어요. 저는 홀로 사시는 아버지와 함께 정말 가난하게 살았기에 용돈 같은 것도 못 받아 봤어요. 제가 만약 무엇을 먹고 싶다면, 저 혼자 알아서 처리 했어야 했죠. 어떤 날은 초콜릿을 훔치고 있었는데 한 점원이 저를 알아채버렸어요. 그래서 막 사과를 하고 있는데 가게에서 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때 저희 누나가 왔는데 울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을 본 저는 그때서야 드디어 누군가가 나를 위해 걱정해 준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저는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었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게 잘못된 것인지도 몰랐죠. 그때가 제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던 때였어요. 친구들이 나를보고 너무 말이 많다고도 했고, 선생님들도 나에게 누나 보다 똑똑하지도 낫지도 않다고 이야기 했어요. 당시 저는 집중도 잘 하지 못했는데, 아마 성폭행으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에게 정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는데…(그런 나를 위해) 울고 있는 누나를 보았을 때 누군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에 참.. 감동받았어요.
가장 힘들게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요?
인생의 지름길을 택하면 먼 길로 돌아온다는 것이요. 제 고등학교는 엄청나게 위험했어요. 등교를 할 때 총알이 우리 쪽으로 오기도 했고… 빨리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래서 컨닝을 많이 했어요. 어쨌든 빨리 졸업해야 되니까... 그렇게 16살 때 졸업을 할 수 있었고 커뮤니티 칼리지에 갔지만 제가 기초 수학이 없어서 사전 대수학을 3번이나 낙제를 했습니다. 만약에 돌아가서 올바른 길을 택할 수 있다면, 저는 지금쯤 이미 의대생이 되었을 것 같아요.
받아본 칭찬 중에 무엇이 가장 좋았나요?
제 이야기가 UCLA에 실렸었고 덕으로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수님 같은 여자분께서 갑자기 저한테 다가오시더니, “와우! 매거진에서 사진을 봤지만, 당신은 실물이 더 매력적이네요!” 라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이게 칭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는 너무 놀라서 딴 말도 못하고 그냥 “아… 감사합니다…” 라고 답했어요.
10년 후의 자신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기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전에는 테슬라랑 에어팟, 뭐 그런 것들을 원했지만, 이제는 좋은 차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NCLC나 그와 같은 단체에게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고, 물론 10년 후에는 의사나 심리치료사 아니면 연구원이되고 싶습니다. 저는 오로지 더 나은 사람이되고 싶고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요.
그런것 같아요. 제가 한인타운으로 이사한 후에 KYCC에서 정신건강검진을 받을수 있었고, 거기에 한인 심리치료사님이 계셔서 좋았어요. 많은 심리치료사들이 보통 백인인데, 이들은 가족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는 것과 같은 아시안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서구 문화는 독립성과 자유가 중심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계속 저한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너는 무엇이든 할수있어!” 또는 “네가 좋을 대로 해!” 라고 계속 말하는데,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에게는 좀처럼 도움이 되지가 않죠.
삶의 여러 장애물에 부딪혀 보셨기에 사회에서 좀더 많은 것들이 개선될 수 있다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한인들이 더욱 더 표현되기를 원해요. 많은 사람들이 제 행동과 외모를 보고 제가 한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러한 한인의 모습이 BTS와 같은 모습보다 더 한국인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BTS와 같은 아이돌 그룹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전통과 문화 전체를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NCLC를 다녀오고 나서 그곳에 같이 있었던 학생들이 모두가 너무 달랐던 것을 보았을 때에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우리 세대의 문화는 이전 세대의 것보다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리 민족의 문화를 잃어버릴까봐 걱정도 됩니다.
한인 문화는 “성공"에 대해서 의사, 변호사나 엔지니어가 되는 것과 같이 매우 고정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걸 아실 것 같아요. 그러면 당신은 “성공”을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매우 흔한 말이겠지만,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저 역시 pre-med라서 많은 한인들이 왜 성공을 그렇게 보는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인종차별을 겪던 시절에 의학박사인 사람을 차별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죠. 저에게 “성공”은 나 자신의 진실된 모습으로 살면서,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정의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입양을 통해 양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 저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현재 입양시스템에 많은 한인 아이들이 있지만, 그 아이들이 양부모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글쎄요, 저도 확실하진 않아요. 애들이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짜증을 나게 할 때도 있겠죠.
어떤 의사가 되고 싶으세요?
저는 제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엄청 똑똑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만 과학 수업에서 A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처럼, 제 생각에 저는 외과 의사 같은건 못할 것 같아요. 주치의나 소아과 의사, 아니면 트랜스와 퀴어 청소년을 위한 의사가 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목숨에 대한 위협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두렵기도 해요. 저는 또한 심리치료사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어요. 심리치료사는 지금도 지원을 할 수 있어서 생각해 본거에요. 그리고 제가 만약에 심리치료사가 된다고 하면 아주 좋은 심리치료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누나랑 친하세요?
예전에 미국에 SaveOn Drugs이라는 가게가 있었어요. 지금은 CVS라고 부르죠. 제가 13살 때 마약을 많이 했었고 SaveOn에서 초콜릿을 훔쳐서 그것을 판 돈을 가지고 마약을 더 샀어요. 저는 홀로 사시는 아버지와 함께 정말 가난하게 살았기에 용돈 같은 것도 못 받아 봤어요. 제가 만약 무엇을 먹고 싶다면, 저 혼자 알아서 처리 했어야 했죠. 어떤 날은 초콜릿을 훔치고 있었는데 한 점원이 저를 알아채버렸어요. 그래서 막 사과를 하고 있는데 가게에서 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때 저희 누나가 왔는데 울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을 본 저는 그때서야 드디어 누군가가 나를 위해 걱정해 준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실 저는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었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게 잘못된 것인지도 몰랐죠. 그때가 제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던 때였어요. 친구들이 나를보고 너무 말이 많다고도 했고, 선생님들도 나에게 누나 보다 똑똑하지도 낫지도 않다고 이야기 했어요. 당시 저는 집중도 잘 하지 못했는데, 아마 성폭행으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에게 정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는데…(그런 나를 위해) 울고 있는 누나를 보았을 때 누군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에 참.. 감동받았어요.
가장 힘들게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요?
인생의 지름길을 택하면 먼 길로 돌아온다는 것이요. 제 고등학교는 엄청나게 위험했어요. 등교를 할 때 총알이 우리 쪽으로 오기도 했고… 빨리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래서 컨닝을 많이 했어요. 어쨌든 빨리 졸업해야 되니까... 그렇게 16살 때 졸업을 할 수 있었고 커뮤니티 칼리지에 갔지만 제가 기초 수학이 없어서 사전 대수학을 3번이나 낙제를 했습니다. 만약에 돌아가서 올바른 길을 택할 수 있다면, 저는 지금쯤 이미 의대생이 되었을 것 같아요.
받아본 칭찬 중에 무엇이 가장 좋았나요?
제 이야기가 UCLA에 실렸었고 덕으로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수님 같은 여자분께서 갑자기 저한테 다가오시더니, “와우! 매거진에서 사진을 봤지만, 당신은 실물이 더 매력적이네요!” 라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이게 칭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는 너무 놀라서 딴 말도 못하고 그냥 “아… 감사합니다…” 라고 답했어요.
10년 후의 자신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기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전에는 테슬라랑 에어팟, 뭐 그런 것들을 원했지만, 이제는 좋은 차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NCLC나 그와 같은 단체에게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고, 물론 10년 후에는 의사나 심리치료사 아니면 연구원이되고 싶습니다. 저는 오로지 더 나은 사람이되고 싶고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