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크리스틴 리
Kimbop TV 최고경영자
크리스틴 리는 달라스와 피닉스의 NBC 방송국에서 10 년 이상의 전문 업무 경험을 쌓은 에미상 후보 TV 기자입니다. 크리스틴은 그녀의 회사 Kimbop TV 플랫폼을 통해 강렬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비디오를 촬영, 제작, 편집 등을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틴은 현재 귀중한 경험을 나눠주며 대상 마케팅을 하는 회사를 돕는 여행 비디오 제작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선생님께서 뉴스 리포터에서 사업가로 변신을 하였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김밥TV 및 이를 통해 하시는 일에 관하여 이야기 해주실 수 있나요?
김밥TV는 저의 플랫폼입니다. 예전에 저의 직업이 NBC의 리포터였다면, 이 플랫폼은 저만의 NBC 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저의 스토리를 항상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갖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제가 방송 저널리스트로서 가진 모든 재능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돕고 스스로도 성취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작년부터 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을 했을 때 다음 3 가지 것을 하기 위해서 김밥TV를 창업했어요: 첫째는 미디어 코칭을 통해서 퍼블릭 스피킹과 적절한 토킹 포인트들을 찾는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 드리는 것이고, 둘째는 프로모션 목적의 광고 영상을 만들 여력이 없는 영세업체들을 위해 비디오를 만들어 드리고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깊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퍼블릭 스피킹으로, 어떤 행사에서 MC가 필요할 경우 그분들에게 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의 다른 문화 가운데에서 자라는 것이 어떠셨나요? 그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조화를 시켰는지요?
저는 당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없었던 컬버 시티에서 자랐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아웃사이더처럼 비춰졌었고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는 동양인들이 많은 학교를 다녔는데, 제가 백인 여학생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자 그 동양인 학생들은 저를 따돌리고 저에 대한 루머를 퍼뜨렸었어요. 그 경험은 저에게 “아..동양인들은 불친절하구나"라고 생각하게 했고, 저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자라면서 보아 온 부정적 모습의 아시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저의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숨기려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것 같아요. 대학을 나오고 독립을 한 후에야 제 고유의 문화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어요. 저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리워하고, 제가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음식을 찾아서 먹는 그런 것 말이에요.
기자로서, 미디어에서 어떻게 비추어지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목격하셨나요?
요즘에는 당연히 올림픽, 케이-팝, 케이-드라마들이 한국문화를 대중화 시켜서 제가 알았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더 받아들이고 있죠. 제가 자랄 당시에는 한국 문화는 멋진 것이 아니었어요. 한국 문화는 좀 구린 것으로 여겨졌죠. 도시락으로 한국음식을 싸 왔을 때 냄새 난다고 놀리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먼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한인타운으로 오고 있어요. 최근 제가 한인타운에서 음식 투어 비디오를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다른 도시에서 뿐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그 음식을 먹기 위해 온다는 것에 대해 가게 주인분들이 많이 놀라시는 모습을 보았어요.
자신의 뿌리와 더 가까워지면서 혹시 한국인이나 한국계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도록 이끌린 적이 있으신가요?
피닉스에서 북한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여 피닉스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보통 미국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은 북한에 독재자가 있다는 것과 북한이 한 나쁜 일들에 관해서만 알고 있죠. 하지만 현실은, 북한에는 그 곳을 떠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게다가 피난을 시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해를 당할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엄청난 대가를 치루면서 탈북을 합니다. 그 분들은 거기에서 나오셨고, 이제 이 곳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이 매스미디어가 커버하지 못하는 한인의 경험들을 강조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 이슈 외에, 또 어떤 한미 공동체 관련 이슈에 주목하고 계신가요?
한 문제는 가정폭력이예요. 저는 가정폭력과 성폭행을 집적 경험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아시아, 특히 한인 문화 가운데 얼마나 흔한지 알고 나서부터는 제 마음이 훨씬 더 무거워졌었어요. 어째서인지 저는 이 문제가 단발적이고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면서 가정 폭력적 행위들이 한인 사회 내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새크라멘토에서 약 100 명의 한국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몇몇 할머니들께서 우셨고 어떤 할아버지들께서는 눈길을 돌리며 고개를 흔드셨어요. 그 후 저는 그분들 중 학대의 피해자들과 또는 가해자들이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고, 제 생각에 그분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얘기한 적 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이 대화를 통해 그분들이 살았던 삶과 취했던 행동 -- 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취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행동들에 관하여 회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린 것 같습니다.
가정 폭력은 우리 한인 문화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한 이슈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한인 사회에서 가정 폭력이 이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요. 지금까지도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소중하고, 남자 아이들은 집에서 왕처럼 자라죠. 제가 태어났을 때도 제가 아들일 줄 알았는데 딸로 태어나서 우리 할머니께서 우시고 엄청 서운해 하셨다고 했어요. 이렇게 남자 아이들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면서 성장을 하니까 자기는 잘못하는 것도 하나도 없고, 여자 아이들을 비하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죠. 또한, 한국인들은 과도한 음주로도 악명이 높은데, 저는 술이 가정폭력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과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뭐든 괜찮다고 생각하게 하고 자제력을 잃게 하는 것 같아요.
저희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가족분들도 이민 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있는데, 혹시 영어를 못해서 가족이 정부 또는 건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나요?
예전에 제 할아버지께서 간식 가게를 하셨었어요. 생각해보면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지금까지도 저희 할아버지처럼 바로 이민을 오신 분들이 사업을 해내시는 걸 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해내시는 거에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제가 모든걸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할아버지 포함해 이분들은 자기만의 사업을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 세우셨다는 점에서 엄청난 용기를 보여주셨다고 생각해요. 저의 어머니는 간호사가 되고 싶으셨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꿈을 못 이루셨고, 그것이 엄마의 커리어를 인생을 바꾸었어요.
어린 한미인 세대에 관하여 이해할 수 없는 부분 하나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한미인만의 문제는 아닌것 같은데, 제가 느끼기에는 젊은 세대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이 대우 받을 자격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열심히 일을 안해도 되고, 숙제도 부모님이 해주시고, 운전해서 데려다도 주시고... 이건 제가 어렸을 땐 제가 스스로 다 했어야 했던 것들인데, (부모님이 다 해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이들에게 진짜 인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들어 몇몇 어린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매번 자기들이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 저는 속으로 그러죠, “제발 너의 일이나 제대로 하렴".
어린 한미인 세대에게 선생님께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자신의 부모님과 가족을 존중하고, 또한 자기 자신도 존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세요. 제가 신문에서 첫 TV 직업으로 갔을 때 급여가 반으로 줄었고 당시 Wendy’s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다 적게 받았어요. TV 방송의 세계에 발을 딛어 보고 싶어서 큰 선택을 한 것이죠. 제가 가족들에게 저의 희망과 꿈을 이야기 했을 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거니까 당분간 모험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셨어요. 자기 자신에게 그런 모험을 할 기회를 주되, 멀리 보고 현명하게 생각하며 실천하세요.
사실 저는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던 것 같아요.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자기 관리는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어떤 곳에 너무 빨리 다다르려 하면 결국엔 지쳐버리고 하고자 했던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될 거에요. 하지만 천천히 더 튼튼한 기초를 만들수록 당신은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김밥TV는 저의 플랫폼입니다. 예전에 저의 직업이 NBC의 리포터였다면, 이 플랫폼은 저만의 NBC 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저의 스토리를 항상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갖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제가 방송 저널리스트로서 가진 모든 재능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돕고 스스로도 성취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작년부터 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을 했을 때 다음 3 가지 것을 하기 위해서 김밥TV를 창업했어요: 첫째는 미디어 코칭을 통해서 퍼블릭 스피킹과 적절한 토킹 포인트들을 찾는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 드리는 것이고, 둘째는 프로모션 목적의 광고 영상을 만들 여력이 없는 영세업체들을 위해 비디오를 만들어 드리고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깊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퍼블릭 스피킹으로, 어떤 행사에서 MC가 필요할 경우 그분들에게 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의 다른 문화 가운데에서 자라는 것이 어떠셨나요? 그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조화를 시켰는지요?
저는 당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없었던 컬버 시티에서 자랐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아웃사이더처럼 비춰졌었고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는 동양인들이 많은 학교를 다녔는데, 제가 백인 여학생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자 그 동양인 학생들은 저를 따돌리고 저에 대한 루머를 퍼뜨렸었어요. 그 경험은 저에게 “아..동양인들은 불친절하구나"라고 생각하게 했고, 저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자라면서 보아 온 부정적 모습의 아시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저의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숨기려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것 같아요. 대학을 나오고 독립을 한 후에야 제 고유의 문화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어요. 저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리워하고, 제가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음식을 찾아서 먹는 그런 것 말이에요.
기자로서, 미디어에서 어떻게 비추어지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목격하셨나요?
요즘에는 당연히 올림픽, 케이-팝, 케이-드라마들이 한국문화를 대중화 시켜서 제가 알았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더 받아들이고 있죠. 제가 자랄 당시에는 한국 문화는 멋진 것이 아니었어요. 한국 문화는 좀 구린 것으로 여겨졌죠. 도시락으로 한국음식을 싸 왔을 때 냄새 난다고 놀리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먼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한인타운으로 오고 있어요. 최근 제가 한인타운에서 음식 투어 비디오를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다른 도시에서 뿐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그 음식을 먹기 위해 온다는 것에 대해 가게 주인분들이 많이 놀라시는 모습을 보았어요.
자신의 뿌리와 더 가까워지면서 혹시 한국인이나 한국계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도록 이끌린 적이 있으신가요?
피닉스에서 북한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여 피닉스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보통 미국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은 북한에 독재자가 있다는 것과 북한이 한 나쁜 일들에 관해서만 알고 있죠. 하지만 현실은, 북한에는 그 곳을 떠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게다가 피난을 시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해를 당할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엄청난 대가를 치루면서 탈북을 합니다. 그 분들은 거기에서 나오셨고, 이제 이 곳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와 같이 매스미디어가 커버하지 못하는 한인의 경험들을 강조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 이슈 외에, 또 어떤 한미 공동체 관련 이슈에 주목하고 계신가요?
한 문제는 가정폭력이예요. 저는 가정폭력과 성폭행을 집적 경험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아시아, 특히 한인 문화 가운데 얼마나 흔한지 알고 나서부터는 제 마음이 훨씬 더 무거워졌었어요. 어째서인지 저는 이 문제가 단발적이고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면서 가정 폭력적 행위들이 한인 사회 내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새크라멘토에서 약 100 명의 한국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몇몇 할머니들께서 우셨고 어떤 할아버지들께서는 눈길을 돌리며 고개를 흔드셨어요. 그 후 저는 그분들 중 학대의 피해자들과 또는 가해자들이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고, 제 생각에 그분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얘기한 적 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이 대화를 통해 그분들이 살았던 삶과 취했던 행동 -- 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취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행동들에 관하여 회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린 것 같습니다.
가정 폭력은 우리 한인 문화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한 이슈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한인 사회에서 가정 폭력이 이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요. 지금까지도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소중하고, 남자 아이들은 집에서 왕처럼 자라죠. 제가 태어났을 때도 제가 아들일 줄 알았는데 딸로 태어나서 우리 할머니께서 우시고 엄청 서운해 하셨다고 했어요. 이렇게 남자 아이들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면서 성장을 하니까 자기는 잘못하는 것도 하나도 없고, 여자 아이들을 비하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죠. 또한, 한국인들은 과도한 음주로도 악명이 높은데, 저는 술이 가정폭력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과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뭐든 괜찮다고 생각하게 하고 자제력을 잃게 하는 것 같아요.
저희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가족분들도 이민 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있는데, 혹시 영어를 못해서 가족이 정부 또는 건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나요?
예전에 제 할아버지께서 간식 가게를 하셨었어요. 생각해보면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데, 지금까지도 저희 할아버지처럼 바로 이민을 오신 분들이 사업을 해내시는 걸 볼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해내시는 거에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제가 모든걸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할아버지 포함해 이분들은 자기만의 사업을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 세우셨다는 점에서 엄청난 용기를 보여주셨다고 생각해요. 저의 어머니는 간호사가 되고 싶으셨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꿈을 못 이루셨고, 그것이 엄마의 커리어를 인생을 바꾸었어요.
어린 한미인 세대에 관하여 이해할 수 없는 부분 하나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한미인만의 문제는 아닌것 같은데, 제가 느끼기에는 젊은 세대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이 대우 받을 자격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열심히 일을 안해도 되고, 숙제도 부모님이 해주시고, 운전해서 데려다도 주시고... 이건 제가 어렸을 땐 제가 스스로 다 했어야 했던 것들인데, (부모님이 다 해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이들에게 진짜 인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들어 몇몇 어린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매번 자기들이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 저는 속으로 그러죠, “제발 너의 일이나 제대로 하렴".
어린 한미인 세대에게 선생님께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자신의 부모님과 가족을 존중하고, 또한 자기 자신도 존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세요. 제가 신문에서 첫 TV 직업으로 갔을 때 급여가 반으로 줄었고 당시 Wendy’s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다 적게 받았어요. TV 방송의 세계에 발을 딛어 보고 싶어서 큰 선택을 한 것이죠. 제가 가족들에게 저의 희망과 꿈을 이야기 했을 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거니까 당분간 모험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셨어요. 자기 자신에게 그런 모험을 할 기회를 주되, 멀리 보고 현명하게 생각하며 실천하세요.
사실 저는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던 것 같아요.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자기 관리는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어떤 곳에 너무 빨리 다다르려 하면 결국엔 지쳐버리고 하고자 했던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될 거에요. 하지만 천천히 더 튼튼한 기초를 만들수록 당신은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