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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령
Choice Music Records 사장
서미령 님은 코리아 타운 갤러리아 몰에 위치한 뮤직 스토어 Choice Music LA의 사장입니다. 그녀는 1997년 한국에서 이민을 왔으며, 남편과 함께 1998년 부터 소규모 사업자로서는 처음으로 코리아 타운에서 한국 의류 매장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서미령 님은 리포터, 꽃집 주인에서 레코드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을 쌓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소규모 자영업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족분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초이스 레코드를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사업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처음에는 약 15-16년 동안 의류 제작과 도매 사업을 운영했었어요. 그 다음 지금 하고 있는 음악 사업을 있고요. 그때 제 꽃 가게도 열었었는데 건물에 불이나서 없어졌어요.
세상에, 안타까운 일이었네요!
괜찮아요. 제 남편이 맨날 그래요, 안그래도 제가 그 사업을 시작하도록 하게 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고요. (웃음)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한국분들이 많이 하시는 자영업종과 비교할 때 드문 업종인 것 같은데요, 미주 한인으로 자라신 것이 선생님의 창업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1997년, 제가 스무살이었을 때 미국에 왔고, 신랑을 만나 1998년에 우리 사업을 시작 했어요. 그 당시에는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어요. 1970년대 분들은 대부분 슈퍼마켓, 주류판매점이나 세탁소 같은 사업을 했지만, 80년대에는 좀 더 사업이 다양해지고 선택지가 많아졌어요. 저희 부부가 차린 옷 가게는 한인 사업 중에서 아마 처음으로 생긴 옷 가게 같았는데, 그 당시엔 가게들이 몇 군데 밖에 없어서 사업이 잘 됐었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슷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거의 천 개에 가까운 가게가 생겼습니다. 사업이 점점 어려워져서 규모를 줄이고 있던 중에 이 레코드 샵을 창업 할 수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창업 후 에도 10년 동안은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여러 다양한 사업 중에 음악 사업을 고르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글쎄요...음악을 좋아하니까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이 사업을 특별히 고른 것은 아니었어요. 원래는 유명한 한국인 DJ가 운영하던 가게였는데 저희가 그 사업을 인수했죠.
지난 10년 동안은 사업이 힘들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래도 최근에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덕분에 좀 나아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남편이 그 힘들었던 이 사업을 10년 동안 계속 했죠. 케이팝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2010년 부터 천천히 자란 것 같아요. 요즘은 그룹 BTS가 인기가 정말 많아요. BTS 전에는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빅뱅과 같은 1세대 케이팝 그룹들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저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소규모 자영업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족분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초이스 레코드를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사업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처음에는 약 15-16년 동안 의류 제작과 도매 사업을 운영했었어요. 그 다음 지금 하고 있는 음악 사업을 있고요. 그때 제 꽃 가게도 열었었는데 건물에 불이나서 없어졌어요.
세상에, 안타까운 일이었네요!
괜찮아요. 제 남편이 맨날 그래요, 안그래도 제가 그 사업을 시작하도록 하게 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고요. (웃음)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한국분들이 많이 하시는 자영업종과 비교할 때 드문 업종인 것 같은데요, 미주 한인으로 자라신 것이 선생님의 창업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1997년, 제가 스무살이었을 때 미국에 왔고, 신랑을 만나 1998년에 우리 사업을 시작 했어요. 그 당시에는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어요. 1970년대 분들은 대부분 슈퍼마켓, 주류판매점이나 세탁소 같은 사업을 했지만, 80년대에는 좀 더 사업이 다양해지고 선택지가 많아졌어요. 저희 부부가 차린 옷 가게는 한인 사업 중에서 아마 처음으로 생긴 옷 가게 같았는데, 그 당시엔 가게들이 몇 군데 밖에 없어서 사업이 잘 됐었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슷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거의 천 개에 가까운 가게가 생겼습니다. 사업이 점점 어려워져서 규모를 줄이고 있던 중에 이 레코드 샵을 창업 할 수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창업 후 에도 10년 동안은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여러 다양한 사업 중에 음악 사업을 고르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글쎄요...음악을 좋아하니까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이 사업을 특별히 고른 것은 아니었어요. 원래는 유명한 한국인 DJ가 운영하던 가게였는데 저희가 그 사업을 인수했죠.
지난 10년 동안은 사업이 힘들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래도 최근에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덕분에 좀 나아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남편이 그 힘들었던 이 사업을 10년 동안 계속 했죠. 케이팝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2010년 부터 천천히 자란 것 같아요. 요즘은 그룹 BTS가 인기가 정말 많아요. BTS 전에는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빅뱅과 같은 1세대 케이팝 그룹들의 인기가 높았습니다.
예전에는 가게 손님들이 거의 한인분들 이었죠?
전에는 그랬었죠. 우리가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CD와 테이프를 판매하고 있었고 MP3는 꾸준히 많아지고 있었어요. 보통 저보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 오셔서 CD나 테이프 등을 사가지고 가셨어요. 우리는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한인이 아닌 외국인 손님들도 많이 오지요?
네! 정말 그래요. 저희 손님들 중 90 퍼센트, 아니 97 퍼센트는 한국인이 아니에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랑스럽죠.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1997년에 왔어요. 42년 전이었죠. 이건 정말 놀랄만한 변화에요. 예전에는 영어 팝송들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케이팝을 듣고 있어요. 케이팝 전에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많았고 지금은 케이팝도 인기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아요. 한국인이 아닌 분들이 노래 가사를 다 알고 따라부르고 춤추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정말 놀랐었지만, 지금은 이제 익숙해요. 이 사업을 안했으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조차 몰랐을거에요. 이런 현상의 중심에서 음악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아드님에게 사업을 물려주시려고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와 남편은 소셜미디어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가 어려워요. 저희 첫째 아들 스티븐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특히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소통할 줄 아는 특별한 감각이 있어요. 사실 저희 사업이 그런 방법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거든요.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 @choicemusicla는 무려 58,900명의 팔로워가 있습니다.
받았던 칭찬 중에 가장 최고의 칭찬이 무엇이었나요?
글쎄요, 제가 45년 전에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전공으로 공부했을 때 칭찬 받은게 기억나네요. 그 당시 한국에는 컴퓨터가 아직 없어서 모든 것을 손으로 다 했어야 됐어요. 수작업으로요! 당시 교수님이 저에게 제 손이 컴퓨터 같다고 칭찬하셨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인 것 같아요. 줄자를 쓰지 않고도 맨손으로 더 작업을 잘했었습니다.
예전에 리포터를 하셨다고 했는데, 그것에 대해 좀 더 설명 해주실 수 있나요?
리포터가 되고 싶다는 꿈은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저의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리고 말도 잘 못할 때 부터 저에게 녹음을 많이 해보게 하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말하거나 노래하는 모습을 항상 찍으셨죠. 어떤 녹음 중에는 “나 피곤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있어요. 이런 영향이 제가 리포터 꿈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고도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 왔을 때, 막 20살이 되었고 영어도 잘 못했기에 그런 전공을 가질 수 없었어요. 저는 결국 그래픽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바로 낳는 바람에 저의 전공을 계속 살릴 수가 없었어요. 제 남편이 의류 사업을 시작했을 때 저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할 수도 없었죠. 당시 상황은 그랬지만, 제가 48세가 되었을 때 리포터로 잠깐 일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인가요? 자라면서 그 의미가 달라졌나요? 그리고 지금 그 “성공"에 도달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크리스챤으로서 저의 삶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 따라 사는 삶이길 원합니다. 제가 항상 꿈 꿔 왔던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삶을 명예롭게 살고 싶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것과 미국에서 한 일도 포함해서요. 처음 우리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많은 것을 겪었어요. 강도 사건도 있었고, 돈을 갚지 않던 사람도 있었고, 불도 났었죠. 하지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 삶이 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구나를 배웠어요. 제가 낳은 자식들 조차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주지 않았죠.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계획을 준비해주셨고 내 삶의 여러 면이 하나님 없이 설명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저는 더 열심히 일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이게 저의 목표예요.
전에는 그랬었죠. 우리가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CD와 테이프를 판매하고 있었고 MP3는 꾸준히 많아지고 있었어요. 보통 저보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 오셔서 CD나 테이프 등을 사가지고 가셨어요. 우리는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한인이 아닌 외국인 손님들도 많이 오지요?
네! 정말 그래요. 저희 손님들 중 90 퍼센트, 아니 97 퍼센트는 한국인이 아니에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랑스럽죠.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1997년에 왔어요. 42년 전이었죠. 이건 정말 놀랄만한 변화에요. 예전에는 영어 팝송들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케이팝을 듣고 있어요. 케이팝 전에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많았고 지금은 케이팝도 인기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아요. 한국인이 아닌 분들이 노래 가사를 다 알고 따라부르고 춤추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정말 놀랐었지만, 지금은 이제 익숙해요. 이 사업을 안했으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조차 몰랐을거에요. 이런 현상의 중심에서 음악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아드님에게 사업을 물려주시려고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와 남편은 소셜미디어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가 어려워요. 저희 첫째 아들 스티븐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특히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소통할 줄 아는 특별한 감각이 있어요. 사실 저희 사업이 그런 방법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거든요.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 @choicemusicla는 무려 58,900명의 팔로워가 있습니다.
받았던 칭찬 중에 가장 최고의 칭찬이 무엇이었나요?
글쎄요, 제가 45년 전에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 전공으로 공부했을 때 칭찬 받은게 기억나네요. 그 당시 한국에는 컴퓨터가 아직 없어서 모든 것을 손으로 다 했어야 됐어요. 수작업으로요! 당시 교수님이 저에게 제 손이 컴퓨터 같다고 칭찬하셨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인 것 같아요. 줄자를 쓰지 않고도 맨손으로 더 작업을 잘했었습니다.
예전에 리포터를 하셨다고 했는데, 그것에 대해 좀 더 설명 해주실 수 있나요?
리포터가 되고 싶다는 꿈은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저의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리고 말도 잘 못할 때 부터 저에게 녹음을 많이 해보게 하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말하거나 노래하는 모습을 항상 찍으셨죠. 어떤 녹음 중에는 “나 피곤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있어요. 이런 영향이 제가 리포터 꿈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고도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 왔을 때, 막 20살이 되었고 영어도 잘 못했기에 그런 전공을 가질 수 없었어요. 저는 결국 그래픽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바로 낳는 바람에 저의 전공을 계속 살릴 수가 없었어요. 제 남편이 의류 사업을 시작했을 때 저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할 수도 없었죠. 당시 상황은 그랬지만, 제가 48세가 되었을 때 리포터로 잠깐 일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인가요? 자라면서 그 의미가 달라졌나요? 그리고 지금 그 “성공"에 도달하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크리스챤으로서 저의 삶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 따라 사는 삶이길 원합니다. 제가 항상 꿈 꿔 왔던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삶을 명예롭게 살고 싶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것과 미국에서 한 일도 포함해서요. 처음 우리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많은 것을 겪었어요. 강도 사건도 있었고, 돈을 갚지 않던 사람도 있었고, 불도 났었죠. 하지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 삶이 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구나를 배웠어요. 제가 낳은 자식들 조차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주지 않았죠.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계획을 준비해주셨고 내 삶의 여러 면이 하나님 없이 설명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저는 더 열심히 일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이게 저의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