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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스 김
KAFC 전무 이사
필리스 김은 캘리포니아 한인 포럼 (KAFC)의 전무 이사입니다. 그녀는 제 2 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정부가 자행한 성 범죄에 대한 피해 회복과 정의를 추구하는 “위안부 피해 회복 운동"의 운동가입니다. 그녀는 위안부 이슈에 관한 문제의식과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대화의 커리큘럼에 포함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KAFC에서 일하셨나요? KAFC가 다루고 있는 이슈들 중에 위안부 이슈 외의 이슈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저는 2007년에 처음 KAFC 일을 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10년 동안 큰 계획을 세워서 활동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제가 관심을 갖고 시작했던 것은 House Resolution 121을 통과시키려는 캠페인이었어요. 위안부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오랫동안 정의를 기다려 온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도록 촉구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의안은 3세대 일본계 미국인인 마이크 혼다 국회의원께서 직접 소개 시켜주셨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스러웠습니다. 한국에 계신 피해 할머니들 중 한 분을 미국으로 초대해서 모셨는데, 할머니께서 정치인들과 만나 언론 인터뷰를 하실 때 제가 통역을 해드리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보여주신 용기에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들의 용기는 참 놀라웠어요. 선생님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분들이 피해자 분들과 동참하여 싸우도록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여자로서 단 한 번의 강간 사건이라도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망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워도 조용히 살아야 했고,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도 힘든 고통을 내면화 하고 무덤까지 같이 가져가야 했죠. 하지만 이 할머니들은 너무나도 용감하고 강하신 분들이에요. 이 모든 것은 할머니 한 분의 용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91년에 김학선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침묵을 깨뜨리면서, 이것이 다른 피해자 분들에게도 많은 용기를 주었고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의 인정과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30년간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국에 생존하는 피해자 분들을 직접 도와주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KAFC는 필리핀에나 중국에 있는 위안부 단체들과도 함께 일하나요?
네, 그렇지만 저희는 주로 주요 전장이었던 미국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김 여사님의 증언은 정말로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더 많은 피해자들, 주로 한국에 계신 피해자 분들이 증언을 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 시위를 시작 했고, 유엔(United Nations)과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와 같은 국제기구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아직도 거부하면서 도덕적 책임만을 인정했죠. 물론 피해자 분들은 이런 반쪽짜리 무능한 사과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방해를 많이 받으실거라 추측되는데, 그들의 증오감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KAFC는 처음부터 활동을 많이 했던 단체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능숙하게 미디어를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연락할 생각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 자들은 오로지 위협을 받을만한 사람들에게만 위협을 가합니다. 해봤자 성공적이지 않을거란걸 알면서 왜 하겠어요? 만약에 그들이 위협을 가한다 해도 저는 미디어를 통해 이에 대응하면서 그들을 당황스럽게 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2007년에 처음 KAFC 일을 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10년 동안 큰 계획을 세워서 활동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제가 관심을 갖고 시작했던 것은 House Resolution 121을 통과시키려는 캠페인이었어요. 위안부 결의안은 일본 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오랫동안 정의를 기다려 온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도록 촉구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의안은 3세대 일본계 미국인인 마이크 혼다 국회의원께서 직접 소개 시켜주셨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스러웠습니다. 한국에 계신 피해 할머니들 중 한 분을 미국으로 초대해서 모셨는데, 할머니께서 정치인들과 만나 언론 인터뷰를 하실 때 제가 통역을 해드리기도 했습니다. 할머니께서 보여주신 용기에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들의 용기는 참 놀라웠어요. 선생님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분들이 피해자 분들과 동참하여 싸우도록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여자로서 단 한 번의 강간 사건이라도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망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워도 조용히 살아야 했고, 보통 사람은 생각하기도 힘든 고통을 내면화 하고 무덤까지 같이 가져가야 했죠. 하지만 이 할머니들은 너무나도 용감하고 강하신 분들이에요. 이 모든 것은 할머니 한 분의 용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91년에 김학선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침묵을 깨뜨리면서, 이것이 다른 피해자 분들에게도 많은 용기를 주었고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의 인정과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30년간 투쟁을 이끌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국에 생존하는 피해자 분들을 직접 도와주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KAFC는 필리핀에나 중국에 있는 위안부 단체들과도 함께 일하나요?
네, 그렇지만 저희는 주로 주요 전장이었던 미국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김 여사님의 증언은 정말로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더 많은 피해자들, 주로 한국에 계신 피해자 분들이 증언을 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 시위를 시작 했고, 유엔(United Nations)과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와 같은 국제기구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아직도 거부하면서 도덕적 책임만을 인정했죠. 물론 피해자 분들은 이런 반쪽짜리 무능한 사과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방해를 많이 받으실거라 추측되는데, 그들의 증오감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KAFC는 처음부터 활동을 많이 했던 단체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능숙하게 미디어를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연락할 생각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 자들은 오로지 위협을 받을만한 사람들에게만 위협을 가합니다. 해봤자 성공적이지 않을거란걸 알면서 왜 하겠어요? 만약에 그들이 위협을 가한다 해도 저는 미디어를 통해 이에 대응하면서 그들을 당황스럽게 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었나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은 주로 무지에서 나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실제 이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The Apology’ 같은 영화를 보게 된다면 우리가 왜 이렇게 열심히인지 깨닫게 될 거예요. 최근에 독일에서 The Apology의 상영회와 2시간 가량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우리 회원 한분의 친구인 독일 남성이 우리의 독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에 대해 약간 회의감을 표시했었어요. 그 친구의 말로는 독일은 이미 피해자들에게 정식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 및 보상을 했다는 것이었어요.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기념관도 세우고 교육 시스템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가르치도록 함으로써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일본에서도 독일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일본이 이런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라, 계속 사과를 하도록 요구하면 오히려 못 받을 수 있다’라는 입장이었어요.
그가 영화를 보고 2시간 가량의 질의응답 시간을 거치는 동안 그 독일남성은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엄청난 돈과 노력을 역사를 수정하는데 쏟아 부으면서 잘못을 전부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왜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를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죠. 정말 일본 정부가 스스로 인정을 할 것 같나요? 우리는 계속 그들에게 압력을 주어야만 합니다.
글렌데일에는 상당한 규모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선생님의 노력과 도시에 세워진 기념비에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일본인 수용소를 실제로 경험하고 관련 피해배상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지지한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글렌데일 시를 상대로 기념비 제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을 때, 그분들은 우리와 같이 매우 강경하게 대응하였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위안부 결의안을 소개한 것도 일본계 미국인 국회의원이었습니다.
NCLC에서 선생님을 뵙지 못해 아쉬웠는데요, 오셨더라면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셨어요? 특히, “성공"에 대해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성공 대신에 리더쉽에 관하여 이야기 해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리더쉽이 얼마나 좋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사회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성공" 과 “리더쉽"의 정의에요. 훌륭한 사업가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곧 그가 리더쉽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곧 그를 리더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죠. 많은 정치인들이 사회에 좋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을 한번 보세요. 미국의 이민 정책이 왜 이러는지, 플린트의 수도시설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리고 경찰의 폭력과 흑인 인권의 문제들도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보세요. 우리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우리 사회에 도대체 뭘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한번 보시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성공과 좋은 리더쉽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사회에 좋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가에 따르는 것입니다. 제가 이 운동에 헌신하는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고 우리 한인 여성들이 정말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지만, 더 나아가 위안부는 한인들 외에도 있는 국제적인 문제라서 그렇습니다. 암울한 시대와 장소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일들을 당해야 했던 우리 할머니들에게 마음이 가죠. 그분들의 유일한 잘못은 그때 태어난 것 밖에 없어요. 저를 포함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저는 이 문제를 한인 이슈만이 아니라 여성의 이슈로 보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이 같은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제가 어떤 국수주의적인 복수심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우리는 이러한 이슈들이 위안부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성을 띄고 있는 이슈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은 주로 무지에서 나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실제 이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The Apology’ 같은 영화를 보게 된다면 우리가 왜 이렇게 열심히인지 깨닫게 될 거예요. 최근에 독일에서 The Apology의 상영회와 2시간 가량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우리 회원 한분의 친구인 독일 남성이 우리의 독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에 대해 약간 회의감을 표시했었어요. 그 친구의 말로는 독일은 이미 피해자들에게 정식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 및 보상을 했다는 것이었어요.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기념관도 세우고 교육 시스템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가르치도록 함으로써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일본에서도 독일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일본이 이런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라, 계속 사과를 하도록 요구하면 오히려 못 받을 수 있다’라는 입장이었어요.
그가 영화를 보고 2시간 가량의 질의응답 시간을 거치는 동안 그 독일남성은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엄청난 돈과 노력을 역사를 수정하는데 쏟아 부으면서 잘못을 전부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왜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를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죠. 정말 일본 정부가 스스로 인정을 할 것 같나요? 우리는 계속 그들에게 압력을 주어야만 합니다.
글렌데일에는 상당한 규모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선생님의 노력과 도시에 세워진 기념비에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일본인 수용소를 실제로 경험하고 관련 피해배상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지지한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글렌데일 시를 상대로 기념비 제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을 때, 그분들은 우리와 같이 매우 강경하게 대응하였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위안부 결의안을 소개한 것도 일본계 미국인 국회의원이었습니다.
NCLC에서 선생님을 뵙지 못해 아쉬웠는데요, 오셨더라면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셨어요? 특히, “성공"에 대해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성공 대신에 리더쉽에 관하여 이야기 해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리더쉽이 얼마나 좋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사회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성공" 과 “리더쉽"의 정의에요. 훌륭한 사업가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곧 그가 리더쉽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곧 그를 리더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죠. 많은 정치인들이 사회에 좋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을 한번 보세요. 미국의 이민 정책이 왜 이러는지, 플린트의 수도시설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리고 경찰의 폭력과 흑인 인권의 문제들도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보세요. 우리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우리 사회에 도대체 뭘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한번 보시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성공과 좋은 리더쉽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사회에 좋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가에 따르는 것입니다. 제가 이 운동에 헌신하는 이유는 내가 한국인이고 우리 한인 여성들이 정말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지만, 더 나아가 위안부는 한인들 외에도 있는 국제적인 문제라서 그렇습니다. 암울한 시대와 장소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일들을 당해야 했던 우리 할머니들에게 마음이 가죠. 그분들의 유일한 잘못은 그때 태어난 것 밖에 없어요. 저를 포함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저는 이 문제를 한인 이슈만이 아니라 여성의 이슈로 보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이 같은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제가 어떤 국수주의적인 복수심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우리는 이러한 이슈들이 위안부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성을 띄고 있는 이슈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